성장(成長) - 『Unreal Life』

한 명의 아이를 온전한 사회의 일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성인으로 키워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워 여러 사람의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양수 밖을 나와 급격하게 바뀐 환경에서 부모의 얼굴을 보면서, 그리고 비언어적인 일방적 의사소통으로도 자기의 욕구가 충족될 때 1차적인 안전과 사랑에 대한 안심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좀더 크고 청소년기가 되면 선생의 존재가 중요해집니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하려는 과도기에서 겪는 혼란을 알아줄 수 있는 유일한(가족 제외) 어른이죠. 『Unreal Life』의 주인공인 하루처럼 때론 그 과도기가 스스로 감당하기 벅찰 때 옆에서 지탱해줄 수 있는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하루가 친구한테 따돌림을 받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을 때 죽음을 앞둔 주마등에서 삶의 이유를 다시 찾아낸 것은 '선생님'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처럼 인생을 먼저 경험해보고 조언해줄 수 있는 부모가 아닌 어른의 존재는 인격 형성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 선생의 존재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서이초의 교사가 학부모 등쌀에 못이겨 자살하는 뉴스가 도배되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음을 직관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이번 일로 인해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하는 생각은 국영수사과에 초점 맞춰진 교육 환경에선 허황된 얘기입니다. 하지만 저런 일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왜 저런 사고가 반복되는지 그 근본을 따져가다 보면 허황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네요. 

 

사실 우리나라 청소년의 교육은 부모도, 선생도 아닌 인터넷 매체가 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의 문제가 뭐냐면, 아이들로 하여금 비판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감정적인 반응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의 수라도와 같은 겁니다. 서로 다양한 의견이 오고가는 가운데 다양성을 체험하기보다는 다름에 대해 틀리다고 매도하고 날을 세우는 늪에 빠지는 거죠. 

 

여기에 대한 책임은 아이도, 부모도, 선생이라는 어느 한 집단에 대해 물을 수 있는게 아닙니다. 그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학부모를 잡아다 공개 재판에 처하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을까 싶네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에게요. 

 

아이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참으로 간단하면서도 복잡합니다. 가정에서 하지 않으니까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는 여건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세상에 수천만명의 사람이 있고, 이 사람들에게 전부 자식 교육에 있어 진지한 고찰을 하게끔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비현실적입니다. 교육의 수준이 낮든, 생계에 치이든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은 너무나 많거든요. 그렇다면, 적어도 부모와 아이가 얼굴을 대면하는 와중에 부모의 가치관을 자연스레 아이가 습득하고 여기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시간이 너무 적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과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으면 자기 가치관이 희미해지고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욱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인터넷 매체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습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삶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선 사실 그 효용이 크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결과는 게임 내 다음 대사가 잘 말해주죠.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는 했지만, 사실 게임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스승의 의미 이런 것은 아닙니다. 스승의 사랑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한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과정이 주인 스토리죠.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얘기를 하는 이유는 이 게임을 아주 예전에 샀는데 하필 지금 플레이한 것이 신기해서 그렇습니다.

 

게임 그 자체로도 수작인 게임입니다. 스토리야 흔하디 흔한 클리셰지만, 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만드는 연출과 스토리텔링은 정말 괜찮았습니다. 퍼즐과 어드벤처의 요소는 사실 거의 없었지만요. 그냥 스토리의 진행을 위한 하나의 서사 정도로만 느껴졌습니다. 마지막 즈음 학교에서 벨과 함께 푸는 퍼즐은 나름의 재미가 있긴 했지만요.

 

결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내면 세계에서야 현실의 공간이 아니니 어떤 동화같은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지만 그 안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든 간에 사실 당장 현실에서 큰 변화는 없습니다. 그저 이 칙칙한 분위기의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갈 희망을 그래도 갖게 되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죠. 엔딩을 보고 난 뒤 바뀐 오프닝 화면이 그걸 말해줍니다. 

여전히 주변 현실은 달라지지 않고, 그저 처음보다 약간은 밝은 채색의 도시 풍경이 보입니다. 차는 여전히 바쁘게 스쳐 지나가고 그저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볼 뿐. 저도 옛날에 무언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크게 달라지진 않더라고요. 그 때 깨달았던 것들이 그 뒤의 인생에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