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2회차 플레이하면서 스토리를 다시 감상하면서 느낀 점이나 결말을 암시하는 내용을 더 써보고자 합니다. 전 포스트에서 굿 엔딩 부분을 제대로 다 말하지 못한 것을 더 얘기하고 싶어서 써보는 글입니다.
사실 꽤 초반부에서부터 마리의 죽음에 써니와 바질이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바질이 마리를 언급한 직후 써니가 하얀 세계에서 칼로 스스로를 찌르는 장면이 나오죠. 써니가 하얀 세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칼로 스스로를 찌르는 장면은 마리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을 뜻한다고 봤습니다.

그리고 써니의 트라우마를 대면하는 장소가 일관되게 자신의 집 계단이라는 것도 꽤나 강력한 암시죠. 물 공포증, 거미 공포증, 고소 공포증이 현실의 써니가 가진 트라우마와 연관된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써니가 트라우마를 가지게된 장소는 자신의 집이라고 얼추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론 오브리 캐릭터에 이입을 많이 했습니다. 마리가 죽었을 때는 아무도 곁에 있어주지 않았으며, 4년만에 만난 짝사랑하던 남자애는 나온 첫날에 자기를 칼로 찌르고 다른 친구와 자기를 폭행하기까지.. 왜 그럼에도 써니를 계속 좋아하며 이사간 후에도 계속 연락하자며 은근슬쩍 호감을 표하는지.. 찐사랑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힘들더라고요.


특히 이 대사는 오브리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사라 짠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브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제가 그닥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님에도 오브리의 여린 내면과 상처로 얼룩진 삶 때문에 이입이 강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누나에 대한 죄책감도 꽤나 많은 곳에서 드러납니다. 기본적으로 목을 매단 모습이 변형된 귀신이 계속 따라다니는 것도 그렇지만, 어떤 곳에선 써니를 진실로 가는 기억을 열어주기도 하고, 어떤 곳에선 전투로 지친 써니를 치료해주기도 하죠. 그렇게 보면 마리는 써니의 트라우마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진실을 받아들이고 트라우마를 이겨내도록 하는 걸음을 도와주는 역할이기도 한.. 기묘한 존재네요.


사건의 진상에 대한 퍼즐을 다 모으고 바질을 구하고 나면 굿 엔딩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서부턴 써니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정말 전부 인상깊습니다. 제일 먼저 누나로부터 용서를 받는 장면이 나오죠. 더 이상 실수를 피해다니지 말고 널 지켜볼테니 제대로 살아달라고.. (아아.. 갓마리) 뭐.. 엄밀히 말하면 누나를 죽인 써니가 스스로를 용서하는 장면이라고 말하는 편이 좀더 정확하겠습니다만.


그리고 '그 날'을 상징하는 부서진 바이올린을 여태까지 친구들과 같이 쌓았던 추억들로 복원시키고 '그 날'의 일로 하지 못했던 연주를 마무리짓습니다. 이 장면이야말로 작품 내내 트라우마에 힘을 못쓰던 써니가 처음으로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완성하는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죠. 전 여기에서 뽕에 취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게임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녹아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연인 간의 사랑, 남매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 그 사랑을 잃었을 때 보이는 반응도 가지각색입니다. 극한의 회피 전략으로 히키코모리가 되거나, 활달함 속에 상처를 묻고 살거나.. 모르긴 몰라도 이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사람의 심리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스토리가 엄청 심오하고 난해한 것은 아닐지언정 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이 반응하는 다양한 양상을 잘 알고 있고, 그 양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데 상당한 재능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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