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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광기(狂氣) - 『Poppy Playtime!』

by 그녀의세계 2023. 5. 10.

아직 전 시리즈가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근래 해본 게임 중 상당히 인상깊었던 게임이었다. 작년 여름이었나? 파피 플레이타임 챕터 1이 유튜버들 사이에서 신박한 인기를 끌었고 리액션 영상 하나로 인기를 모은 유튜버가 있을 정도였다. 나는 원래 공포 게임을 거의 안해봤기에 이 게임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를 잘 몰랐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를 느꼈던 허기워기와의 컨베이어 벨트 추격전도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고 느꼈다. 하지만 챕터 2까지 플레이해보고 공장 안의 세계관을 다 본 지금, 파피 플레이타임은 공포라는 장르를 벗어난 상당한 퀄리티를 가진 게임이라고 느꼈다.

내 개인적인 감상으로 챕터 1,2 통틀어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장면은 마미 롱레그가 분쇄기에 갈려서 죽는 장면이었다. 육체는 장난감일지언정 인격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그토록 잔인하게 죽는 장면 자체로도 임팩트가 컸지만, 여태까지 밝혀진 스토리와 챕터 2에서 마미 롱레그의 감정 변화를 복합적으로 생각해보면 챕터 1, 2를 통틀어 가장 임팩트가 크지 않았나 싶다. 내가 봤던 공포 게임들은 대부분 퀄리티가 높지 않았다. 잔인한 장면이나 흔히 말하는 갑툭튀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정도였을 뿐. 그리고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나오는 싸이코패스 살인마들도 대부분은 몰입이 안되는, 흔히 말하는 가짜 광기였다. 싸이코패스의 심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싸이코패스의 자극적인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는 한 마디로 싸구려 캐릭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미 롱레그는 대사, 행동, 성우의 연기 뭘로보나 정말 훌륭한 싸이코패스였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키워낸 플레이타임 공장의 억까까지. 내가 눈여겨본 마미 롱레그의 인상적인 면을 몇 가지 적어보겠다. 내가 심리학을 전공해서 싸이코패스에 대해 이론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첫 번째. 기차 코드를 미끼로 주인공과 게임을 하는 마미

게임 후반부 하수 처리장의 보고서에서 나오는 내용이지만 마미 롱레그는 원래 사람의 인격을 가지는 장난감으로, 실험실 직원에 대한 적대적 성향과 피실험체 아이들에 대한 보호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아이들을 접할 수 있는 게임 스테이션에 배치되어 아이들을 돌봤는데, 아이들을 진심으로 돌봤지만 실험에 의해 어디론가 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지속적인 '상실'을 경험한다. 이로 인해 점점 공격적인 성향이 강화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마미에게 기차 코드는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게임 스테이션에 계속 상주하길 바라면서도 이상한 룰의 게임을 제시하며 주인공을 죽이려 하는 모순적인 감정을 드러낼 뿐이었다.

두 번째. 일방적인 게임

게임을 하다보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너무나 불합리하다. 나는 실패시 죽지만 마미는 아무런 리스크가 없으니까. 하지만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하다. 싸이코패스에게 일반인의 상식은 통하지 않으니까. 싸이코패스의 감정선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한참 다르다. 바로 그것이 싸이코패스 스릴러가 주는 공포라고 생각한다. 일반 사람의 상식과는 너무 달라서 어디에 맞춰야 하는지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마미 입장에선, 실험으로 탄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타고난 모성애로 직원들을 적대하고 피실험체 아이들을 보호하려 하지만, 그 피실험체 아이들도 어디론가 사라지기에 경험하는 지속적인 상실을 경험하고, 폐공장에 수년간 갇힌(사실은 나가지 않는 것일 뿐이지만) 경험은 괴리에 인격이 잡아먹히기에 충분할 것이다.

세 번째. 처형

불합리한 게임에서 탈출한 주인공에게 마미는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며 목숨을 건 술래잡기 게임을 일방적으로 시작한다. 그 와중에서 부드러운 말투와 격앙된 말투가 극명하게 대비되며 공포감을 더한다. 자신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주인공을 향해 마미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모를 괴상한 절규의 목소리를 내뱉는데, 이는 주인공을 향한 극도의 분노와 다시 찾아오려는 고독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주인공에 대한 적개심과 집착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인데, 이는 마미의 처형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분쇄기에 손이 끼어 끌려들어가는 와중에 주인공한테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라고 외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마미의 대사를 들어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주인공에 대한 배신감이 뒤섞인 듯하다. 아마도 모성애의 본능에서 나오는 애정과 무수한 상처에서 나오는 격노라는 모순된 감정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것이 아닐까.

가장 충격적이었던 마미가 분쇄기에 갈리는 모습... 장난감임에도 마치 생명체처럼 몸통 부분이 피가 튀고 터지는 모습은 말을 잃게 만들었다. 사진 속 마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공포에 휩싸인 모습이다. '그'가 자신의 일부로 만든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지만 'There are fates worse than death(다잉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그런데 마미... 바보 아닌가? 레버 다시 올리면 발이 하나 없어질지언정 죽지는 않을텐데...ㅋㅋㅋ)

어쨌든, 이 게임이 마무리 되어 가면서 장난감 공장의 충격적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이 장난감공장의 설립자 엘리엇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영원히 옆에 있어 줄 수 있는 살아있는 장난감을 개발하려 했고, 여기에 변하지 않는 무언가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스텔라 연구원을 영입하여 타진했다. 플레이타임 전 임직원이 고아들을 입양하여 지하 아주 깊숙히 자리한 연구 시설에 아이들의 능력을 테스트(게임 스테이션에서 했던 게임)하여 양귀비를 매개로 한 살아있는 장난감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프로토타입 1006이 개발되었는데, 이후 모종의 사건이 발생해 모든 직원이 사라지게 된다. 그 후 장난감공장의 전 직원(?)이던 주인공은 공장으로의 초대 편지를 받게 되고 공장을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인디게임 치고 생각보다 장난감공장 내의 세계관 구성이 치밀했고 인물 구성을 실감나게 잘 했다. 챕터 3이 매우 기대되는 이유는 솔직히 챕터 1은 별 감흥 없었는데 스토리 떡밥이 풀리고 나니 너무나 인물도 잘 만들었고 스토리도 참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 다른 공포 게임 몇 개 해보니까 이 만큼의 퀄리티를 가진 공포 게임이 몇 없었다. 환원이 진짜 갓겜이었구나... 하는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