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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완행(緩行) - Retour à l'état de nature.

by 그녀의세계 2025. 12. 5.

Retour à l'état de nature. 

(자연으로 돌아가라) -장 자크 루소

 

2025년 지금, 우리를 지배하는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고 한다면, 그 안에 AI는 반드시 들어갈 것입니다. AI는 단순한 기술의 트렌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꽤 많이 바꿔놓고 있습니다. 이전 세대의 세탁기가 그러했고, 인터넷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최신의 트렌드에 따라가고자 부족하지만 AI에 대해 공부하고 받아들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얼리어댑터 까지는 아니지만, 관련 뉴스나 논문을 읽으면서 나름 따라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AI를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AI를 공부하는 이유는 부정적인 면을 경계하기 위함에 더 가깝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AI라는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문제는 AI가 어떻게 활용되고 누구에 의해 점유되느냐 입니다. 

 

AI가 부각되기 이전에 블록 체인 기술이 주목받았던 적이 있었죠. 블록 체인이라는 기술은 굉장히 신선했다고 생각했던 점이 증명의 과정을 상당히 분산시켜놨습니다. 제가 블록 체인에 전문가는 아니다보니 비트코인의 증명 과정에 한해서만 얘기하자면, 각 코인 소유자의 통장의 건전성을 증명하는 것은 기존 화폐와 같은 중앙 은행이 아닌 코인 소유자 모두였습니다. 즉, 각자가 소유한 화폐의 가치를 소유자 모두가 떠받치는 셈입니다.

 

하지만 AI는 그런 관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각 언어 모델 회사가 소유한 언어 모델의 신뢰성을 증빙하려면 어떤 데이터를 수집했는지, 수집한 데이터를 어떻게 전처리했는지, 모델 아키텍처가 어떻게 되는지, 모델에 어떤 제약을 가하는지 등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현존하는 유명한 LLM 모델 중에 이러한 사항들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곳이 있을까요? 즉, LLM은 상당히 폐쇄적이며(블랙박스라고도 하죠), 데이터를 소수의 회사가 독점하다시피 하는 지극히 중앙 집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특별한 얘기는 아닙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이유는 남들보다 더 양질의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기 위한 것이고, 이는 달리 말하면 남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것입니다. AI도 그러한 시도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AI 그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AI가 발전함에 따라 AI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AI는 정말 똑똑합니다. 아직 physical AI나 agentic AI가 등장하려면 멀었다고는 해도, 제 생각에는 정말로 AI가 인간의 비서 역할을 하게 될 날은 시간 문제이지 반드시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룰 도구가 점점 똑똑해진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은 아닙니다. 왜냐 하면 아무리 똑똑한 도구이고, 인간을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고 해도 도구를 다루는 인간의 능력이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지 못한다면 인간이 역으로 도구에 이용당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과 같은 플랫폼은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런 플랫폼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 플랫폼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끔 알고리즘을 설계합니다. 그 사람이 자주 소비하는 콘텐츠를 탐색하여 쇼츠, 릴스와 같이 짧은 1분 남짓 되는 짧은 영상으로 지속적으로 플랫폼에 머물게끔 합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 사람을 그 플랫폼에 아무 생각 없이 머물게끔 만드는, 명백히 도구와 주체가 역전된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면서도 그 도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AI는 도구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을 가속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스스로를 더욱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남의 관점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의 대화를 더 많이 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상당히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 과실은 상당히 느리게 나타나고요. 그래서 사람은 언제나 편리함을 가장한 '악'에 물들기 쉽습니다. 자기가 중심이 잡혀 있어야 어떤 도구든 스스로 선택을 할 줄 알고, 소비되는 콘텐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가능한데, '악'은 언제나 편리함을 무기로 달콤한 유혹을 하죠. 그리고 SNS와 AI는 '악'이 자주 사용하는 편리한 무기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기술이 주는 가스라이팅에 제대로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오래된 용어입니다만, 왜 유비쿼터스가 마치 좋은 것 처럼 인식돼야 하죠? 물론 기술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도 존재하지만,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불편함, 불편함을 넘어 우리가 기술이 말하는 the faster! the faster!에 쫓겨 사는 신세가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나요? 

 

우리는 본래 이렇게 빠르게 살도록 설계된 생명체가 아닙니다.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 릴스나 들여다보면서 1분마다 주제가 휙휙 바뀌는 영상을 소비하도록 설계된 생명체는 더더욱 아닙니다. 좀더 확장하면 우리 삶도 사실 그렇게 빠를 필요가 없습니다. '갓생러' 라는 말이 자기 착취에 내몰리는 젊은 세대를 상징한다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자기 착취를 하든 게으른 삶을 살든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느냐의 여부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빠른 템포의 인생을 원하는 사람은 그렇게 살고, 아닌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죠.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빠른 템포의 인생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행복을 찾아 나가고,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게 장려하는 인간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AI의 시대를 대처하는 자세로서도 중요합니다. 사실 저는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만의 철학자여야 하고, 자기 자신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아직까지는 AI와 인간이 차별화되는 거의 유일한 지점입니다. 이게 아니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이 존재할 필요가 없어요. AI는 아직까지는 훨씬 뛰어난 구글입니다. 인간 사이에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질문'이란 개념이 형성되면서 남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로 정보를 얻어내는 풀이 지금까지 계속 확장됐고, AI도 그런 맥락 중 하나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그렇듯, 좋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사유할 틈도 없이 사고 주제가 휙휙 바뀌는 미디어 환경. 사람을 제일 활동하기 좋은 시간대에 직장에 붙잡아 놓고 심지어 밤 늦게까지 일을 하게 만드는 환경에서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더 암담한 것은 아직 청년 세대가 이 문제에 대해 문제 의식은 있으나 공론장에 나오질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불만을 커뮤, 인스타, 유튜브에서 아주 극단적으로 배설하죠. 이건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아주 극단적인 사상과 무차별적인 혐오를 부추기기 좋은 세대입니다. 이래서는 미래가 불투명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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