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BO 게임을 개발했던 플레이데드 게임사의 후속작이다. LIMBO는 배경의 흐름과 소년의 행동으로 스토리를 은유적으로 흘린다. 너무 오래돼서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소년이 여행하는 연옥이 인류가 거쳐왔던 시대를 상징한다. 처음엔 문명이 없는 자연 그 자체에서 시작했다. 그 당시엔 인류가 자연에 대항할 수단이 거의 없었으므로 맹독을 가진 거미가 게임에서의 묘사처럼 치명적이었을 것이며, 기생충에 의한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점차 문명이 등장하는데, 마지막엔 산업혁명을 방불케 하는 공장이 등장하고 미래의 과학을 상징하는듯 역중력 장치도 등장한다.
하지만 LIMBO의 퍼즐 완성도는 그다지 높다고 볼 수는 없었다. 피지컬에 의존하는 퍼즐이 많았고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기믹도 있었다. 『INSIDE』는 오히려 퍼즐의 난이도를 대폭 낮춰서 비교적 쉽게 전체 스토리를 끊기지 않고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LIMBO에서보다 비교적 분명하게 전체적 스토리를 명확하게 그려주는 편이다.
『INSIDE』의 시작은 LIMBO와 비슷하다. 풀숲에서 시작하는 어린 남자 아이. 행동의 목적을 제시하지 않고 그냥 갈 수 있는 방향을 향해 간다는 느낌. 하지만 전작과는 달리 초반부터 인간 문명의 어두운 면을 암시하는 장면과 바로 맞부딪힌다.

사람을 컨테이너 박스에 태워서 어디론가 떠나는 트럭. 위험한 상황을 이해한듯 소년은 몸을 숙인다.
하지만 사람을 태워가는 트럭이나 남자아이에게 총격을 가하는 상황가는 약간 무관하게, 이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나면 돼지 목장이 등장한다. 마치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이 생각나게 하는 떼죽음을 당한 돼지들과 살아남은 병아리 몇 마리가 전부인 세기말적인 장면이지만.

산처럼 쌓인 돼지 사체 속에 주인공에게 몰려드는 병아리가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진다
목장을 지나가고 나면 공장이 등장하는데, 전작보다 사회 비판의 성격이 좀더 명확해진다. 남녀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무언가에 세뇌된 것처럼 혹은 좀비가 된 것마냥 어디론가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소년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전부 검은색 혹은 흰색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일하게 채색이 되어있는 소녀를 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세뇌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소년

물론 영화에서 소녀의 의미와는 약간 다르지만.
이 비판에 더욱 확신을 실어주는 것은 바로 '감시자'의 존재다. 그 감시자는 사람이기도 하고, 로봇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뇌된 사람은 주인공의 이질적인 모습을 눈치채지 못하며, 말 그대로 '살아만' 있는 상태인 것이다.

'감시자'는 이질적인 존재를 순식간에 눈치챈다
하지만 다음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이와는 약간 다른 듯 하다. 세뇌조차 되지 않아 반쯤 살아있고 반쯤은 죽은 듯한 모습이다. 주인공이 조종 장치로 조종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오로지 생존에 관한 본능만 남고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특이한 점은 꽤 높은 곳에서도 떨어져도 죽지 않고, 후반으로 가면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닌 팔다리가 하나쯤 떨어져 있다던지 하는 약간 기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주인공 머리의 조종 장치를 통해 간접적으로 주인공을 돕는다
이 노동자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주어진다. 뒤이어 나온 실험실로 보이는 무언가인데, 외견상 실험실로만 보일 뿐 정확히 무슨 실험을 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실험실 직원이 타고온 잠수정을 어린 남자아이가 능숙하게 조종하는 것이다. 게다가 직원이 타고온 잠수정을 직원이 한눈판 사이에 훔쳐 타는, 그 나이대 남자아이가 하기 쉽지 않은 판단도 보여준다. 잠수정을 탄 채 이 시설의 거대함을 보여주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BGM은 플레이데드 회사만의 독특한 감성이다.

이것이 일개 실험 시설의 규모라면 믿어질까
이 실험 시설에서 어떤 실험을 하는지에 대한 힌트는 바로 물귀신(?)이다. 형체는 분명 사람인데, 물 속에서 숨을 쉬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이 쯤에서 아마 인체 개조 실험을 이 곳에서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동시에 자아를 잃은 노동자의 정체에 대한 추측도 할 수 있는데, 생체 실험의 실패작을 재활용해 노동자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 다음 파훼해야할 대상은 일정한 주기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파괴력의 충격파다. 이 충격파는 주변의 철제 물건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일격에 파괴시킬 정도로 엄청나다. 나무 상자는 산산조각이 나며, 이 충격파를 주인공이 맞게 될 경우 사지가 찢어져 흩뿌려지는 고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충격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작품 내에서 명확하게 근거를 제시하진 않지만 전체적인 기조를 봤을 때 핵실험 과정에서 나오는 엄청난 충격파를 상징한 것이 아닐까.

단 일격의 충격파에 거대한 나무 상자가 산산조각난다
충격파를 지나고 나면 갑자기 소년의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이전까지 주인공을 해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물귀신이 주인공의 몸을 자신과 똑같이 물 속에서도 호흡이 가능한 몸으로 개조해버린 것이다. 이 쯤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던 물귀신은 사실 처음 보는 또래와 놀고 싶었던 것 뿐이라는 것이다. 물귀신이 소년을 끌고 내려가는 장면을 보면 수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장난치는 것 같기도 하고, 소년이 질식하자 당황하는 기색도 얼핏 보인다.

소년의 몸에 무언가 장치를 연결해 신체를 개조하는 물귀신
마침내 이 거대한 실험 시설의 정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는 듯 싶다. 마치 연구에 뭔가 큰 성과를 낸 듯 연구실 직원들은 어떤 수조 안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수조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실험실이라기엔 무언가 어색한 공간들이 플레이어에게 이질감을 상기시킨다.

무언가를 신기하게 구경중인 연구실 직원. 당연하게도 그 실험체의 정체를 지금 당장 보여주진 않는다

이 공간들은 무엇이 목적일까? 마치 일제시대의 변사가 나와야 할 것 같은 고전적인 극장에 한 실험체가 피를 흘리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생체 실험을 하는 연구소에 어린 아이가 침입했는데도 직원들이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아이가 수조에 침입해 연구실의 가장 중요한 실험체를 확인하고 접근하는데도 말이다. 그 정체는..

마치 관조하듯 소년이 융합체에 접근하는 것을 지켜보는 연구실 직원들
소년이 융합체로부터 실험 장치를 제거하자 융합체는 소년을 끌어들여 융합시켜버린다. 그리고 이 융합체는 수조를 탈출하는데, 신기하게 융합체가 돌아다니며 건물을 박살내고 있는데도 제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더 기괴한 점은 이 융합체에 들어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전부 살아있는듯 걸을 때마다 여러 명의 숨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린다는 점이다.

이 융합체는 힘으로 랙 장비를 뜯어내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하며,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으며 신체 일부가 떨어져도 피 한방울 나지 않는 괴이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 융합체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짐작되는 간부를 짖뭉개 죽여버리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원흉에게 복수하는 듯하다.

그 뒤로도 연구실 직원들의 수상한 행동은 계속 관찰되는데, 문이 박히고 부수고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융합체에게 뒤로 물러나라는 손짓을 한 뒤 자기가 직접 문을 열어주는가 하면, 높은 곳에 위치한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도와주기도 한다.

뒤로 물러나라는 제스처로 자신의 안전을 확보한 후 문을 열어주는 직원

공중으로 뜨는 상자를 직접 작동시켜 융합체에게 건네는 직원

상자로 융합체를 유인하는 모습. 융합체의 탈출은 계획의 일부일 뿐, 직원들의 태도에도 당황한 기색이 별로 없다
어찌어찌 탈출에 성공한 융합체는 연구소 밖 풀숲에서 쓰러진 채 게임이 끝난다. 하지만 게임의 진행 과정을 천천히 되짚어 보면 이는 결코 해피엔딩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융합체를 비춘 빛이 자연광이라기엔 너무나 작위적인 빛이라는 점. 처음 융합체가 수조에서 탈출했을 때를 되살펴 보면 엔딩 장면과 비슷한 초원에 빛을 비추는 모습까지 너무나 닮았다. 이는 융합체의 탈출조차 하나의 설계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추측이 만약 맞다면 소년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히든 엔딩과 도전 과제에서 유추할 수 있는데, 맵 곳곳에 숨겨진 모든 의문의 장치를 파괴하고나면 히든 엔딩을 볼 수 있다. 히든 엔딩은 벽과 연결되어 있는 어떤 관을 뽑아버리면 볼 수 있는데, 뽑는 즉시 소년의 행동이 멈추고 다른 노동자와 비슷하게 고개를 푹 숙이며 행동을 멈추며 게임이 끝난다.
여기에서 추측할 수 있는 소년의 정체는 연구원 중 일부가 자신이 실험하던 융합체를 해방시키기 위해 조종하는 하나의 또다른 실험체라는 것이다. 소년의 약한 신체를 고려해보면 인공적인 산물은 아닌 것 같지만 어린아이임에도 납치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으며, 잠수정 조종에 능숙하고 횃불을 이용해 개를 쫓는 장면이나 도전 과제하면서 파괴하는 장치가 소년이 실험체를 조종할 때 쓰는 장치와 유사하게 생겼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인간은 선사 시대부터 꾸준히 이전까지는 그 어떤 종도 정복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정복해나가는 중이다. 첫 번째로 불. 자칫 생명을 앗아가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불을 인간은 통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만들어내는 방법도 발명하였다. 이것은 자연을 정복해나가는 인류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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