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예익의 유스티아』

그녀의세계 2024. 6. 16. 22:18

나름 에로게 중에서는 상위권의 퀄리티를 뽐내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름 스토리에 흡입력이 있고 인물들이 매력 있어서 나름 즐기면서 했었죠. 

 

이름부터가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예익? '익'이라면 날개를 뜻하는 말일테고, 예..가 무슨 뜻일까? 원문을 보니 추악할 예(穢)를 썼더라고요. 찾아보니 정식 등록된 단어는 아니고, 그냥 사악한 날개라는 뜻인 것 같습니다. 사악한 날개라..

 

공략 가능한 히로인은 피오네, 에리스, 콜레트, 라비리아, 리시아, 유스티아 이렇게 여섯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루트가 많은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일 선호하는 플롯은 한 명과의 긴 호흡의 스토리를 선호하죠. 약간 바람 피는 느낌이랄까 한 캐릭터에 몰입할만하니 분량상 엔딩이 나고, 다른 루트를 진행하면서 감정을 초기화하는게 썩 달갑지 않은 느낌도 나고요.

 

그런데 지나고 나니 6명의 히로인들은 진득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감상했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비록 유스티아 루트에서 카임이 너~무 답답해서 살짝 건너뛴 구간이 있었지만.. 제가 느끼기엔 라비리아 루트를 제외하고 다 나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마지막 유스티아 루트가 제일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어쨌든 제가 이렇게 많은 히로인들에게 각각의 매력을 다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지나고 나서 이런 감상이 드는 것도 좀 신기했습니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루트는 에리스였습니다. 자아의 확립 없이 신체적으로만 성장한 사람에게 자유란 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죠. 전 항상 내가 주인공이라면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다른 루트와 비교해서 제일 제 생각과 비슷했습니다. 에리스에게 무작정 자기 갈길 가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무신경한 짓이죠. 적어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천천히 해도 좋으니 같이 너만의 생각을 찾아보자고 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루키우스의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사실 루키우스는 카임과 처음 대면했을 때도 유스티아의 심장에 단검을 꽂아 넣을 때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저 한 '정치가'로서의 모습만 보여줬죠. 하지만 길베르트를 몰아낼 때에는 긍정적인 면이 부각되었고, 유스티아를 실험체로 사용할 때는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루키우스가 권력을 잡고 점차 길베르트의 전철을 밟나 싶었는데, 사실 전철을 밟을 필요도 없이 처음부터 길베르트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입장의 차이일 뿐이죠.

 

결말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좀 갈리는 모양인데, 사실 전 반란군이 성 안까지 들어온 이상 해피엔딩은 무리라고 직감했습니다. 적어도 '유스티아'가 아닌 '티아'와 카임이 초원에서 같이 오손도손 산다는 결말은 불가능했죠. 사실상 배드엔딩과 마찬가지라고 보는게, 육신이 없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기지만, 카임은 티아 등쌀에 밀려 평생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ㅋㅋ 

 

결론은 수작이었으나 진엔딩의 결말이 조금 아쉽고, 서브 히로인들 스토리가 잘 만들어져서 오히려 메인 히로인인 유스티아 루트의 비중이 줄어든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아 그리고 유스티아의 탄생에 대한 떡밥도 뭔가 어정쩡하게 끝난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예익'이란 말 뜻 말인데요, 오프닝 화면에 검은 날개와 흰 날개가 전부 있는걸 보면 파괴와 온존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유스티아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결말이 살짝 『모노노케 히메』의 결말 비슷한 느낌도 나더라고요. 물론 사상적 깊이는 그것보다 훨씬 얕겠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