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 『Coffee Talk』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각자 일생의 이야기를 집대성해 책으로 엮어도 좋을 만큼 모든 사람의 인생은 드라마입니다.
다만, 드라마는 창조자에 의한 각본이지만 우리의 인생은 주체의 사고방식이나 외부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루트가 뒤바뀔 수 있는 무한한 변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변수를 맞아가며 사람의 가치관도 어느 정도 변하게 됩니다.
루아와 베일리스 커플은 전형적인 사회 계급의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게임이기에 종족이라는 수단으로 극적으로 표현했을 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도 공공연히 존재하는 계급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죠. 베일리스의 엘프족이 금수저, 루아는 흙수저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네요.
당연하지만 사람은 적어도 자기보다 낮은 계급의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베일리스 쪽 가족들이 결혼에 더 극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베일리스는 그 전부터 엘프족의 가식에 환멸을 느끼고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서 루아와 결혼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루아 입장에선 자신의 남자친구가 가족을 버리게 두고 싶어하진 않죠.
저도 얼마 전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가족을 버리고 결혼하는 것을 쉽게 본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혼하는 그 순간에야 당연히 내 옆의 배우자를 사랑하니까 가족을 쉽게 버린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가족을 등지고 사랑을 택하는 드라마나 동화 속 이야기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군요.
결혼하는 순간은 대부분 기쁜 순간입니다. 원래 사람은 기쁜 순간이거나 사랑을 하고 있으면 여유가 있고, 덜 이기적이게 되죠. 하지만 사랑이 식어서 그 자리를 정으로 대체해야할 날이 오거나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슬프게도 대다수의 인간은 남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로요.
당연히 이 얘기는 곱게 들릴 리가 없습니다. 만약 이 의견을 인정한다면 자기는 상황에 따라 더이상 희생이 희생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요. 아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보다 이상을 추구하는 젊은 나이에는 이걸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 증거로 저 말을 할 때 베일리스는 고개를 돌리고 있죠.
사실 인간이란 존재는 모두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고 자신이 지켜야할 존재가 생기면 얼마든지 그에 합당하는 대가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있죠. 그것이 가까웠던 친구나 가족, 심지어 자기 양심이라도 말이죠. 갈라는 아주 단순하게 부부싸움의 상황만 예시로 들었지만, 실제론 이것보다 훨씬 복잡할 겁니다. 아무리 가족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정말 평생 아예 얼굴조차 안 볼 정도로 베일리스의 가족은 문제투성이는 아니기도 하고요.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상속에 관해 법적 분쟁이 생길 여지라도 있으면 문제가 더 복잡해지죠.
갈라의 조언은 꽤나 현실적이고 깊은 통찰력을 담고 있었습니다. 갈라의 이 깊은 통찰력은 아마 갈라의 과거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네요. 게임에서 자세히 묘사되진 않지만, 갈라는 전직 군인입니다. 아마 늑대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한달에 한번 이성을 잃고 늑대가 되는 특성)과 군인이라는 특성을 연결시켜 PTSD를 앓고 있는 참전 용사들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자해의 흔적도 굉장히 많고 말 한마디에 뭐랄까 깊은 고뇌의 흔적이 많이 엿보였습니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 참전 미군들 중 PTSD를 앓는 군인이 꽤 많았고, 이로 인해 심리학계에서 전쟁 후처리 과정에서 군인들의 정신 질환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고 하죠. 그 전까지는 PTSD를 능력 부족으로 치부했다면 하나의 치료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겁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람보』에서 잘 드러나죠. 전쟁은 끝났지만 정작 스스로에 대해선 전쟁을 끝내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인데, 갈라는 다행히 어느 정도 극복하고 의료계에서 종사하는 것으로 나오죠.
게임 자체는 굉장했습니다. 최근 해본 비주얼 노벨 게임 중 이렇게 재밌게 했던 게임은 없었습니다. 초반부에는 가벼운 농담으로 적절히 분위기를 풀고 하나둘 무거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가는 식의 강약 조절은 일품이었습니다. 마무리도 매우 현실적으로 잘 마무리됩니다. 간만에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과 깊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게임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