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 로아온 윈터와 플레체
로스트아크는 거듭 생각해봐도 설계 의도는 명확한 게임이다. 학생 직장인 남녀 가릴 것 없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MMORPG 장르의 게임. 하지만 설계 의도에서부터 모순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RPG 게임 자체가 시간이 지날 수록 고일 수밖에 없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투자한 시간과 돈의 차이에 따른 캐릭터 스펙 차이는 서비스 시간이 오랠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장르가 바로 RPG 게임인데, 이 태생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로스트아크는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단히 노력해도 게임이 경화되는 것을 늦출 수는 있어도 영원히 막을 수는 없다. 특히 로스트아크는 이례적인 역주행을 겪었다. 이는 유입을 증가시켜 게임의 수명을 연장시켰지만, 잠재적인 고인물 유저들이 많아질 가능성 또한 높다는 것을 의미했다.
게임이 썩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선 일부 상위 핵과금러보단 훨씬 수가 많은 무소과금들을 위한 설계를 해야 한다. 이는 현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일부 상위 계층이 부를 독식하고 계층 간의 사다리를 치워버린다면 그 사회는 경제 활동의 동력을 상실할 것이다.
로스트아크는 굉장히 소신 있는 운영을 한다. 전 디렉터의 말마따나, 초심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난 금강선 전 디렉터가 사임함과 동시에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k-게임과는 다른 행보를 걷겠다는 그 '낭만'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감동과 낭만을 안겨줬던 로아 유저들의 축제 로아온은 비전도 재미도 없었다. 여기에 실망하고 유저들과의 반복적이고 사소한 갈등에 지쳐 잠시 로스트아크를 내려놨다.
하지만 어제 로아온 윈터는 예전의 그 로스트아크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물론 전 디렉터처럼 엄청난 감동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게임의 비전을 제시함과 동시에 재미까지 챙기는 축제의 현장임에는 분명했다. 이는 금강선 전 디렉터의 비범함으로 인한 차이이지, 현 디렉터들의 부족함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여담이지만 세 팀장이 나오다보니 각 팀장의 캐릭터가 다 달라서 그 차이를 보는 맛도 쏠쏠했다.
더욱이 로스트아크는 계속 발전하고 있다. 솔직히 로스트아크가 스토리, 레이드가 위주인 게임이지만 스토리가 와닿지 않았다. 루테란 서부에서 멋진 연출을 보여줬지만 냉정히 스토리라인은 큰 줄기 외에는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폐위된 왕자 실리안이 모험가의 도움을 받아 악마와 결탁한 숙부를 몰아내고 왕위를 되찾았다는 스토리 외에는. 그 이후 대륙도 마찬가지다. 페이튼, 베른 남부 등 호평받는 대륙이 있지만 스토리텔링 측면에선 어딘지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최근 업데이트된 엘가시아, 플레체는 달랐다. 특히 엘가시아 대륙은 나름 철학적인 주제와 함께 로스트아크 1부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을 버무려서 뽕을 주입하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플레체는 이전 대륙과는 다르게 감정의 동요를 크게 일으키지 않으면서 여운을 남겨주는 더 높은 차원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 더 이상 로스트아크의 연출이 웅장함이나 신파극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대해봐도 좋을 만했다.
로스트아크가 이례적인 역주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도'하는 운영이라고 생각한다. 기존 rpg 게임과는 궤를 달리하겠다는 시도, rpg의 장르를 벗어나 수평적 컨텐츠나 지속 가능한 컨텐츠를 개발하겠다는 시도... 홈런 타자는 홈런보다 삼진을 더 많이 당한다. 하지만 짜릿한 홈런을 보기 위해 삼진을 감수한다. 로스트아크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