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感動) - 스토리 게임
어떤 미디어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참 여러가지다. 연출에 압도당할 수도 있고, 화려하고 독특한 일러스트에 빠져들 수도 있으며, 독창적인 세계관과 스토리에 매료될 수도 있다. 요 몇년 사이에 인상깊었던 게임을 비슷하면서도 다른 관점으로 정리해보려고 한다.
※ Poppy Playtime!
기존의 공포 게임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게임이다. 내가 기존에 즐겼던 공포 게임은 스토리의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유명했던 공포 게임들을 예로 들어보자. 화이트 데이? 프레디의 피자 가게? 그림자 복도? 스토리의 비중은 게임마다 크고 작음이 있었지만, 스토리로 뭔가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파피 플레이타임은 공포 게임에도 이렇게 치밀한 설정과 뛰어난 연출로 공포라는 감정 그 이상을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전의 포스트에도 적어놨지만, 플레이타임 사장과 한 연구원의 장난감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과 그에 따른 피해자들의 광기가 꽤나 깊이 있게 다뤄졌다.
특히 2편에서 마미 롱레그의 감정 널뛰기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성우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사실 파피 플레이타임에서 유일하게 주인공과 상호작용하면서 대화하는 장난감인데, 주인공의 행동에 따라 애원과 협박, 집착이 어우러지는 감정선에 대한 연기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마미 롱레그가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가지게 된 계기가 공장 곳곳에 뿌려져 있는데, 이를 찾아내서 스토리라인과 엮어서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3편 Playcare, 스토리의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지 정말 기대되게 만드는 작품이다.
※ 무기미도
무기미도는 끝없는 미로라는 뜻으로, 아직 출시한지 3달도 되지 않아 정확히 무슨 의미를 내포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관의 특징으로 미뤄봤을 때 앞으로 스토리에 대한 암시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무기미도 게임은 스토리의 비중이 정말 높은 게임이다. 메인 스토리, 이벤트 스토리, 각 수감자에 대한 스토리,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몽경까지. 특히 조야 스토리는 조야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너무 신파도 아닌 딱 적당히 사람의 감정선을 건드리는 스토리는 제작진의 스토리텔링 실력에 감탄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벤트 스토리의 퀄리티도 상당하다. 도저히 일시적으로 즐기고 없어지는 콘텐츠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퀄리티다. 콘텐츠의 종류도 다양하다. 틀린그림찾기, 지뢰찾기, 퀴즈, 추리 게임 등.. 우리나라 게임사에서도 모방하면 좋겠다 싶을 수준의 퀄리티다. 사실 이벤트 콘텐츠를 이렇게 다양하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은데.. 요즘 중국 게임의 퀄리티가 한국 게임보다 좋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 단간론파
단간은 탄환이란 뜻으로, 말이라는 탄환으로 잘못된 논점을 논파하는 추리 게임이다. 현재 단간론파3까지 나오고 끝난 시리즈이고 마무리가 약간 어설프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일본 서브컬쳐 특유의 중2병 감성이 너무 짙게 배어나오는 스토리이기도 하다. 이는 『쓰르라미 울 적에』도 마찬가지다. 둘다 스토리를 마무리짓는 과정에서 뭔가 매끄럽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단간론파는 절망적인 설정과 엽기적인 인물들의 행각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을 줬다.
그리고 슈퍼 단간론파 어나더2라는 걸출한 팬게임까지. 특히 단간론파 어나더는 특유의 중2병 감성을 어느 정도 덜어내고 원작과도 어느 정도의 연결선을 뒀으며 본편 중의 일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퀄리티를 보여줬다. 특히 놀이공원에서 열차 시간을 이용한 살인 트릭은 1인 제작자라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추리와 인물들 간의 기싸움이 느껴져서 몸이 저릿했다.
※ 로스트아크
로스트아크는 정말 독특한 게임이다. 우리나라 게임 치고는. 사실 우리나라 게임 중에서 스토리가 인상깊은 게임은 많지 않다. 몇개 기억나는 것만 적자면 메이플스토리의 설원의 음유시인.. 정도? 이외에 한국산 게임 중에 걸출한 스토리를 가진 게임을 찾을 수가 있을까? 이는 나무위키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인데, 이런 트렌드(?)를 유일하게 역행하는 게임이 로스트아크라고 할만 하다. 물론 이마저도 다른 나라의 게임과 경쟁하려면 부족해보이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로스트아크가 다른 한국 게임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바로 스토리와 연출이다. 사실 스토리 자체가 굉장히 독특하다기보단, 연출이 굉장히 웅장하고 압도적이다. 예전엔 스토리텔링 마저도 별로였는데 최근에는 그래도 나아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토리가 담고 있는 철학적 깊이도 다른 그 어느 한국 게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레이드의 퀄리티도 꽤나 좋은 편에 속하고.
추가적으로 원신이 그렇게 스토리에 있어 고평가를 받는다던데.. 아직은 그 분량이 워낙 방대해서 볼 엄두가 안났다. 한번 시간이 되면 직접 플레이해보고 왜 요즘 다시 원신이 역주행하는지 그 이유를 살펴봐도 괜찮을 것 같다.